전문가들은 생물측정학이 우리의 경제와 일상생활의 전 분야에 적용되기 직전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손가락만 넣으면 제 이름이 나오고 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빨리요?
- 네. 아주 빠릅니다.
- 좋습니까?
- 아주 좋아요.
전세계 사람들이 이미 생물측정학 기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항공사, 주유소, 심지어는 디즈니월드 마저도 고객들의 혈관을 판독하는 방식으로 일일입장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단일세계정부”는 너무나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도록 독재권력을 휘두를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킹제임스성경에는 분명하게 이 짐승의 표 즉, 매매를 위해 필요한 표의 위치가 "오른 손"이나 "이마 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식 가능한 형태의 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는 그 칩을 스캔만 하면 되는 것이죠.
앞으로 이렇게 말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짜리 종이 돈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 이제는 스캔해서 지불해야 돼. 이젠 전자로 다 바뀌었다고.”
식료품점에서 계산대에 식료품을 올려 놓고 “삑”하고 지불하는 것입니다.
손이 없다구요? 문제 없습니다. 머리로 하면 되니까요. 누구나 머리는 다 갖고 있습니다.
계산대에 가서 머리로 이렇게 “삑”라고 지불하면 됩니다. 모든 돈은 전자적 형태를 띄게 될 것이며...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에도 스캐너가 장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두 사람이 재화와 용역을 교환한다고 합시다.
자.. $.이네요. 오른 손 주세요. 제 스마트폰으로 스캔할게요. “삑”. 돈을 이체 받았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셨군요.
레슨비를 드릴게요. “삑”
생각해 보세요. 스마트폰으로 짐승의 표를 스캔하고 그 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가 없는 현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밤 의학 뉴스에서는 쌀알 만한 크기의 칩이 여러분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다는 소식을 보도 드립니다.
때는 년입니다. 무의식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고 신분증도 진료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피부 속에 이식되어 있는 소형 칩 안에 다 담겨 있군요.
년 전에는 공상과학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생물측정학 기술을 활용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생물측정학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 년 안에 지갑과 열쇠들 들고 다녀야 하는 현실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죠.
남은 과제는 이 멋진 신세계에서 우리의 사생활을 안전하게 보장받는 일입니다.
새로운 마이크로칩 기술 덕분에 응급실 직원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컴퓨터 키 하나로 조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응급실 외과의사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해 왔는지 어떤 알러지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존 할렘카 박사는 이 무선식별 칩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른 팔에 그 칩을 이식했는데 스캐너가 이 자리 인식번호를 읽으면 이 숫자를 진료기록이 저장된 보안 웹사이트로 전송합니다.
응급의료기술자 브라이언은 이 칩이 응급의료기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곤란한 문제 중의 하나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환자가 도착했는데 자신의 정보나 진료기록을 알려주지 못할 때입니다.
존 할렘카 박사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암벽을 등반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무의식상태인데 제 몸을 스캔해서 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사생활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쌀알만한 크기의 칩을 깨지지 않는 유리 안에 넣는 것입니다. 마취 하에 실시하기 때문에 시술 과정에 고통은 별로 없습니다.
뜨개바늘을 피부 밑에 이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피부 밑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년 뒤에 집 나간 고양이 한 마리가 다시 돌아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죠. "고양이 한마리를 되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엄마나 가끔 돌아다니다 사라지는 아빠를 위해 진료기록이 입력된 칩 하나를 삽입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또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고양이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 아기에게는 어떨까요?"
“어린이 유괴 경보 시스템이나 어린이 납치에 대한 공포는 이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이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다 하나씩 이식하는 것은 어때요? 그 칩에 다 넣는 거에요. 신용카드, 운전면허..."
"생각해 보세요. 교통카드 까지. 지갑도 필요 없고 키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집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묻고 싶은건 이겁니다. 과연 좋은 생각일까요? 앞으로 다가올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저에겐 너무 공상과학처럼 들려요.
- 지금의 현실이에요.
현실이긴 하죠. 하지만 애완동물이나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거잖아요.
-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 아이는.. 아. 제발..
과거 사람들은 아마 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실현될까?
"어떻게 표가 없으면 매매를 못하게 할까?”
그러나 현재의 기술로 이 표 없이 매매를 못하게 하는 것이 매우 쉬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일 정도의 식량만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매매를 못하면 상당한 타격을 입게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나와 있다는 것이죠.
"이 사람 정말 대단해. 많은 위대한 일들을 하고 있어. 사람들을 연합시키고 있다고."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구호는 단 한가지입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사형"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할거야. 다 참수되겠지.”
성경에도 우리가 참수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참수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단서가 있어요. 이 일이 계속 지속될 경우에 한해서만, 네 맞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기술과 모든 곳에 설치되는 저 감시 카메라, 위성 카메라를 보세요.
경찰은 이제 카메라가 장착된 무인비행기까지 써가며 여러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감시용 무인비행기, 보신 적 있나요?
거리 구석 구석 마이크를 설치해서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반이상향적) 소설 “”와 비슷한 내용이죠.
그것이 현재 우리 미국이 가고 있는 “완전 감시사회”의 길입니다.
과거에는 그냥 비행기를 타곤 했지만 지금은 TSA(연방교통안전청)의 검색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알몸투시기를 거쳐야만 합니다.
투시기와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신분증을 항상 소지해야 합니다.
경찰은 항상 말합니다. “신분증 제시 바랍니다. 서류 제시하세요. 서류가 잘못됐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이 감옥과 같은 행성을 탈출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지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알아 두세요. 우리가 다 죽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참수되고 그리스도 때문에 처형 당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아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다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
성경에는 그 기간의 한중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좀 전에 다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 기억하시죠? 그 분께서 돌아 오십니다.
그들이 기독교를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때 사탄이 통치하는 세계단일정부를 수립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들 속에서 오십니다.
그 때가 바로 휴거의 때이며 예수님께서 땅 위에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때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내용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물을 피로 바꾸시고, 나무와 풀을 태워버리시며, 지옥에서 메뚜기들을 올려 보내 전갈과 같은 꼬리로 사람들을 쏘게 하시는 등...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인데 아직 안읽어 보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NIV는 읽지 마세요. 킹제임스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왕 시간 내서 읽으려면 진짜를 읽어야죠. 모조품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성경에 따르면 용이 이 짐승에게 권능과 자리와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절을 보세요.
(요한계시록 :)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요한계시록 :) 그들이 그 짐승에게 권능을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그와 전쟁을 하겠느냐? 하더라.
(요한계시록 :)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여기서 “마흔두 달”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는 “일”과 모두 동일한 기간인거 아시겠죠?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자, 주목하세요. 절이 핵심입니다.
(요한계시록 :)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요한계시록 :에서 용의 목표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와 싸우러 가는 것임을 보지 않았습니까?
여기서는 성도들과 전쟁하여 - 자 주목하세요 -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성도들과 마귀의 전쟁에서 누가 이깁니까?
마귀입니다.
마귀가 성도들과 전쟁해서 이긴다고 나와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장에 따르면 적그리스도의 목표는 성도들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성도들이 짐승의 표를 받고 박해를 피하는건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참 암담하죠? 일단 끝까지 읽어보세요. 결국 누가 승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은 일시적인 패배입니다.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모든 민족들, 족속, 언어를 다스리는 권능을 가졌고 성도들과 전쟁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성경은 지구 상의 모든 자가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잠깐만요. 아닙니다.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묻겠습니다.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이 사람에게 경배할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너무 신뢰감을 주고 자연스러워서 가능하면 “선택 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사람들 중 아무도 이 자에게 속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비록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믿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런 일들이 시작되는 걸 볼 때 - 지금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깨달으면 더 좋겠지만 - 깨달을 것입니다.
“잠깐만. 이거 지금 일어나고 있잖아. 이 자는 적그리스도야. 이 표는 받으면 안돼. 이 사람을 경배해서는 안돼. 진짜 그리스도가 아니야.”
경배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또한 매매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약국 같은 곳에 가서 짐승의 표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체국에 가서 “제가 매매할 수 있게 칩을 좀 살 수 있나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해야 이 표를 받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몇 십년 전에 거짓말탐지기가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뇌를 촬영해 거짓말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저는 짐승의 표를 받으려면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적그리스도 하에서 충성서약까지 하게 해서...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상과학이 실현되었습니다.
미래의 기술이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뇌 단층 촬영을 통해 식습관 및 성생활 등 미래 행동 예측 가능
생각을 읽는 기계
이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교통은 극도로 통제되어 있어서...
고속도로에서 운전만 해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려면 연방교통안전청(TSA)의 알몸투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밀한 교통 통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짐승에게 머리를 숙이고 경배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사회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우리는 또한 비방을 당할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매우 분명하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신세계질서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치원생을 학교에 입학시키려는데 백신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거부 당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백신에 거부감이 있어서 “나는 백신이 자폐 등 다른 많은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잘은 몰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또한 몸 안에 독을 주입시켜서 더 많은 독에 항체를 생성한다는건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맞습니다.
실상은 학교에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입학이 불가하다고 할 때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소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세를 굽히고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는 쉬운 길로 갈 것인가?
짐승의 표도 똑같을 겁니다. 년 전 사회보장번호(SSN)를 발급할 때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숫자를 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름을 가진 존재라는거였죠.
그리고는 서서히 지금처럼 누구나 다 하나씩 갖고 있는 상황이 되었고 더 이상 그 문제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혹시 단일세계정부로 가기 위한 단계, 단계, 단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기고 자기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신자들, 성도들과 전쟁을 하러 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한 사람에게 권력을 줍니다. 그렇죠? 용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 사람을 통해 전세계 모든 족속과 언어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마귀와 성도들 간의 전쟁을 치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니라.
이 사람이 경배를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여기서 "생명을 받은 짐승의 형상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시간적으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 기술이 정확히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재로서는 이것이 정확히 어떤 형상이 될지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말을 하는 하나의 형상인데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이게 만드는 무언가라는 것이죠.
이것은 다니엘서 장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한 문명 사회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을 기억하시나요?
그가 어떻게 큰 형상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형상에 경배하도록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 형상에 경배하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다 죽었습니다. 그렇죠?
계시록에서 보는 내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느부갓네살의 형상은 적그스리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절을 보십시오.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요한계시록 :)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것은 사탄이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짐승의 표는 성도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매매를 못하면 지금 세상에서 제 기능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또는 어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라는 법을 만드는데 이 것이 바로 성도들에 대한 박해와 전쟁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들이 매매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짐승의 표는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 즉 성도들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장 등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매매를 할 수 없고 사형 집행 영장이 따라 다니게 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전세계에서 - 한 민족이나 국가가 아닙니다 - 전세계에서 매매를 못하고 우리에게 사형 집행 영장이 청구되어 죽음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되시나요?
그뿐이 아닙니다. 저 모든 감시 카메라, 차량번호 인식 카메라, 알몸투시기를 보십시오.
검문소에서도,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에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다른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만 할 것입니다.
“자, 오른손을 내밀어 주세요. '삑'. 이제 가도 좋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절대 지나친 억측이 아닙니다. 몇 세기 전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을 때엔 피부에 와 닿습니다. 그렇죠? 지금 이미 보고 있는... 그래서 저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여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어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십니까? 영적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하면서 당황하게 됩니다.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경고하시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경고했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대환난 시대에 살지 않았지만 모든 신자들이 겪는 그들만의 환난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너희도 알다시피, 진실로, 우리는 미리 경고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따라서 우리는 그 경고를 받고 이 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대환난기에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전혀 경고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미국 전역에 있는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성도들과 전쟁을 하기 전에 휴거가 일어날 거라고 가르치고...
휴거가 하나님의 예언의 시간표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휴거의 임박성”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무 때나 구름 속에서 재림할 수 있고...
재림에 대한 징후가 전혀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지 않으며 그 전에 먼저 일어나야 할 사건들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는 교리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들어보신 분?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이라는 이 교리는 예수님께서 아무 때고 다시 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오실 수 있다고 말하면 저는 묻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나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경엔 아무도 그 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각을 알 수 없다고 나와있잖아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 구절을 찾지 못해서 제가 도와주곤 합니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럼 제가 이렇게 말하죠. "제가 찾아 드릴게요. 마태복음 :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성경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보여 드릴게요. 이게 바로 주류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지금 기독교 서점에 가시면 갖가지 책과 비디오를 팔고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영화 들어보신 분 있나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성경과 상관 없는 완전히 비성경적 영화입니다.
마태복음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 여기 보세요.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르잖아요.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세요.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문제는 “어느 날”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말씀을 마치신 날이죠.
절에는 그 날이 "환난 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마태복음 :)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절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그 날이 “환난 뒤”라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논리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자, 보세요. 환난 뒤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보여주면...
"그건 휴거가 아니네요. 휴거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휴거가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건 환난 뒤잖아요. 휴거는 당연히 환난 전이니까요.”라고 말합니다.
다시 성경 어디에 휴거가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나와있는지 물어보면…
“자, 여기요.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알지 못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그건 휴거가 아니라면서요?”
"환난 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마태복음 장이 휴거에 관한 내용이 아닌데...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른다고 하셨을 때에는 마태복음 장이 갑자기 휴거에 관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들에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갑자기 휴거에 관한 내용이 됩니다.
"그냥 입 다물고 시키는대로 해. 조용히 하고 내가 말한대로 그냥 환난 전 휴거를 믿어"라는 것이죠.
“공평하게 양 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죠.”라고 하면...
“자, 다른 쪽 얘기는 이거야. 입 다물고 내가 말한대로 믿어. 자꾸 질문하지 말고. 조용히 하고 그냥 믿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게 “환난 전 휴거” 교리의 실체입니다. 사실이에요.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저는 수 많은 성경 구절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전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최소한 다른 거짓 교리들은 문맥 무시하고 꼬아서 해석하는 성경구절이라도 하나 있어요.
환난 전 휴거는 성경을 꼬아서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성경구절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환난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기록된 성경 구절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하나의 교리일 뿐입니다.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누군가 읽은 책이나 도표에서 나온 교리이지 성경에서 나온 성경에 근거를 둔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일반 성도들에게 설명해주면 아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이 이 교리를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알려 드릴게요.
환난 전 휴거는 보편적인 교리입니다. 인기있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면 환난 전 휴거를 가르쳐야 합니다.
환난 뒤에 휴거가 온다고 말하는 순간 따돌림과 배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제에서 거부 당하게 마련이죠. 그들은 이 교리에서 돌아서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에 대한 진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에요.
이 교리를 어둠 속에 묻어두는 방법은 "두려움"과 "위협"입니다.
저는 다른 목회자들과 자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진실을 알리고 그들도 제 의견에 동의하지만...
강단에서 이 교리의 진실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모든 동료 목회자들이 등을 돌릴까봐 두려운 것이죠.
이 주제로 나서서 발언을 하거나 교회에서 설교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어야만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환난 전 휴거를 믿지 않으면 교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과거 오랜 시간동안 잘못 가르쳐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요.
신학교에서 잘못 배웠다는 것과 교리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죠. 우리 모두 새로운 사실을 배워 나갑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잘못했다면 바로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목회자들은 결정해야 합니다.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환난 전 휴거 교리를 가르쳐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실제 성경의 가르침대로 환난 뒤 휴거가 온다고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이 하는 말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하는 완벽한 예입니다.
성경을 우리의 최종 권위로 삼고 실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르는 대신 전통, 배운 것, 사람들이 말하는 것,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저도 과거 환난 전 휴거를 믿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교리였고 거기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접하게 된 후 성경을 다시 보고 성경에서 실제 뭐라고 가르치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세의 흐름에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있는 것과 내가 아는 진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환난 전 휴거” 교리에 대한 저의 입장 때문에 공격도 받고 험담도 당했지만...
만약 이걸 시청하고 있는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진실을 알고 나서...
그 믿음과 입장을 선언하신다면 이 비성경적인 환난 전 휴거 교리의 대세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입장을 바꾸게한 중요 성경구절 중 하나는 데살로니가후서 :-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휴거)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재림,휴거)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아직 그날이 가까이 이르지 않았고 순서상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휴거)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성경이 증거하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가 함께 모이는 날은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죄의 사람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임박한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등장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날이 가깝지 않으며...
누가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며 속이는 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해서 속지 말 것과...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절대 X, Y, Z가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오지 않으니까요.
휴거는 그냥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난기가 먼저 와야 하고,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아야 하며, 주님이 오시는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반드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고 죄의 사람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오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나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날이 먼저 와야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먼저 권력을 잡아야 그 뒤에 휴거가 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누가복음 장을 보시면 시간적으로 마태복음 장 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장이 누가복음 장과 평행 본문이기 때문이죠.
누가복음 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교리를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재림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악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가 롯의 때와도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죠.
사람들은 “맞아.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세상은 사악해 질거야”라고 말하며...
지금 우리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가리키며 소돔과 고모라 같다고 하거나 노아의 날들처럼 사악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의 정확한 의미가 아닙니다.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 마찬가지로 롯의 날들에도 그와 같았으니 그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건축하였으되 롯이 소돔에서 나간 바로 그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려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이 본문의 가르침은 롯이 소돔을 탈출한 것이 휴거를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두 천사가 세상을 예표하는 소돔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도시에 퍼부어지기 전에 롯(신자)을 탈출시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그 분의 천사들을 보내 신자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 모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에서는 구체적으로 반시간쯤 지난 후에 그 분의 진노를 쏟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화 “남겨진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사라지고 다 어디로 사라졌냐고 묻는 상황은 실제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엔 우리가 사라지는 바로 그 날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시작하신다고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을 땅에 내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달려갈 것이며 바위가 떨어져서 불과 유황과 다가올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가려주길 바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그 날이 하나님께서 진노를 퍼붓기 시작하시는 날입니다.
성경에 해와 달이 어두워질 때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바로 그 날, 반 시간쯤 뒤에,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장에서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장에서 믿는 자들의 큰 무리가 하늘에 나타나고...
장에서 진노를 퍼부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장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진 뒤 휴거입니다. 간단합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입니다.
한 부류는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언급 조차 안되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사실 매우 이상한 일이죠.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때의 사건들에 대해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만큼 중요한 모든 시대 모든 신자들이 채여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는 사건을 빠뜨린다구요?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휴거가 요한계시록에서 전혀 언급도 안되고 발생하지도 않아서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므로...
수많은 환난 전 휴거론자들이 찾고 찾아서 결국 환난 전 휴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냈고...
제가 반복적으로 듣는 그 근거 구절이 바로 요한계시록 :입니다.
(요한계시록 :) 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이것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입니다. 이 구절에 요한(단수, 한 사람)에게 말하는 “나팔”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thee, 단수) 보이리라."
이 장면이 바로 휴거라고 합니다. 단지 한 사람이 올라가는 장면인데요?
문제는 절은 읽지도 않고 이걸 휴거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휴거는 영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몸의 부활입니다. 실제 몸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는 것이죠.
영이 올라가는 그런 사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은 휴거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의 몸이 부활하고 그 뒤 살아 남아 있는 우리의 몸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는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요한이라는 한 인물의 영이 채여 올라가는 것은 절대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게 휴거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정말 엉성히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문자적 성경 해석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어디 나오냐고 물어보면 요한계시록 :에 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절에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는 말씀은 읽지도 않습니다.
요한의 몸이 실제로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몸은 밧모 섬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가는 이 휴거라는 사건은...
영적으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걸 휴거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해석인 것이죠.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을 휴거라고 보는 이유는 계시록에서 환난 전에 나오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어 맞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 찾기는 찾아야 했겠죠.
저도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배우며 성장했지만 요한계시록에는 휴거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배워왔습니다.
항상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휴거와 같은 중대하고 중요한 사건이 마지막 때의 예언에 관한 책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휴거는 살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단지 사라지는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사건입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위를 보고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느니라.”
그 순간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떨어지면 위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이제 다 끝났다.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우리가 해냈다..."
마치 헐리우드 유명인사들이 입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어떤 곳에 입장할 때 보면 항상 불빛과 폭죽을 터뜨리고 연기를 피우곤 하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 좀 보세요."
요한계시록 장, 마태복음 장, 마가복음 장, 누가복음 장 등에서 묘사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모습은 실제로 보면 정말 놀라운 광경이 될 것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또 지진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님이라고 해도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 칠흑과 같은 암흑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온 하늘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성경에는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저쪽까지 번쩍여 빛을 내는 것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채여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살아서 그날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생에 이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생애에 일어나서 제가 그 박해와 환난을 견뎌내고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일을 목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감격스러운 광경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밀스럽게 재림”하셔서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헐리우드식 개막쇼와 같이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전적으로 옳은 말씁입니다. 요한계시록 장에서도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라고 말씀하셨고...
현재 시제인 “오시느니라”(cometh)"라고 말씀하신걸 보면...
다음에 예수님께서 오실 때는 구름들과 함께 오시며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죠.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죽도록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걸 볼 때 통곡하고 울며 죽도록 두려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흥분되고 전율이 넘치는 실로 대단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사람들이 진실에 눈을 뜰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단순히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십대였을 때 요한계시록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고 읽더라도 “정말 그 뜻이야? 실제 그런 의미야?”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휴거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면서 성경이라는 책이 저에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읽다 보면 정말 쉽게 잘 이해됩니다.
우리가 주류 기독교와 근본주의 침례교도 진영에 다가서서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의 눈을 열어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부흥이 일어나고 설교자들에게 말씀 공부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켜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유는 교리적인 분열을 일으키거나...
성경의 예언에 대해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이 사건들은 실제 일어날 사건입니다.
성경은 앞으로 “단일세계정부”, “단일세계종교”, "단일세계화폐"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의 음모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닙니다. 실제 일어날 사건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기근이 있을 것이며, 역병이 번지고 박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전무후무한 환난에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환난 전 휴거라는 꾸며낸 이야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저도 휴거를 믿습니다. 성경적 교리이니까요.
그러나 휴거는 환난 후에 일어납니다.
“Jimenez 목사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우리가 뭘 하고 살든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살다가 늙어서 죽거나, 살면서 휴가도 보내고 노후연금에 투자도 하며 인생 즐기고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사라지면 끝이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이 전해지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나태하고 안일해졌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박해가 시작됩니다. 휴가도 가고 할 일도 해야겠지만 속 사람도 단련시켜야 합니다...
이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서 그 분을 알아가야 합니다. 지금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빼앗겨서 읽고 싶어도 못읽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언제고 모여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지만...
언젠가는 이런 모임과 이 성경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불법이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내용으로 설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박해가 오고,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요구되는 때가 오면 이 설교를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생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나면 이 설교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고 저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니 불만을 가지라고 말씀 하셨나요?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죠.
용기를 내십시오. 낙담하지 마세요.
설교 듣고 나가면서 “아, 정말이에요? 참수? 감옥? 기근? 역병? 진심인가요..” 하며 걱정하지 마세요. 용기를 내십시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 일이 우리 생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잠시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담겨 있는 분명한 진리에 감사 드립니다. 성령님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수많은 사람들의 세뇌와 거짓말과 스코필드 주석성경의 미혹 속에서 저 혼자서 이 사실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 그 방에서 성령님께서 그 수 많은 미혹들을 차단하시고...
제 마음 속에 마태복음 장에 나오는 이 세 단어(after the tribulation, 환난 뒤에)를 심어 주셨고 살 소년의 마음에 심어주신 그 말씀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 동일한 말씀이 오늘 밤 여기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가슴과 마음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하옵고 감사 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찬송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찬송: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을 하나 부르겠습니다.
찬송을 할 때 가사를 음미하지 않고 노래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찬송의 번째 줄을 보세요.
“나의 죄, 오, 이 영광스런 생각의 기쁨!” 이라는 부분을 보면...
“음, 내 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기쁘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 다음을 보면 "그 죄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는 더 이상 그걸 간직하지 않아요. 주님을 찬양해. 오 나의 영혼이여."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크게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의 죄, 오, 이 영광스런 생각의 기쁨이여!
나의 죄, 그 일부가 아닌 전부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는 더 이상 그걸 간직하지 않다네.
주님을 찬양해. 주님을 찬양해. 오 나의 영혼이여.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이 평안해.
주님, 나의 믿음이 보여지는 날을 재촉하소서.
저 구름이 두루마리처럼 떠나가고
큰 나팔소리 울려 날 때 주님 내려 오소서.
그와 같이 하소서. 내 영혼은 평안하나이다.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이 평안해.
성경은 구원받는 방법에 관해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로마서 :)
저도 의롭지 못하고 여러분도 의롭지 못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가 천국에 가기 위한 조건이라면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할 것
성경은 요한계시록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 잘 들으세요 –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저도 거짓말을 해봤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며 거짓말보다 더한 일도 다 해봤습니다. 인정하자구요.
우리 모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 죄에 대한 형벌을 깨달을 것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 분이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죄 없는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 죄도 짓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은 그 분을 때리고 그 분에게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 제가 지은 모든 죄를 마치 예수님께서 지으신 죄처럼 짊어 지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람들이 그 분의 몸을 취해 무덤에 묻었고 그 분의 혼은 지옥에 일 밤낮동안 내려가 계셨습니다 (사도행전 :).
일 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제자들에게 손 안에 못 자국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들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사도행전 장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그게 다 입니다. 교회에 다니거나, 침례를 받거나, 선한 삶을 살거나, 모든 죄를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을 것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In-N-Out 버거 종이컵 바닥에도 적혀 있을만큼 너무 유명해서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인 요한복음 :입니다.
(요한복음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존하는”은 영원히 존재한다,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성경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존하는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살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영원하고 영존하는 생명입니다.
한번 구원 받고 그 분을 믿었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가 나가서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짓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 이 땅에서는 저에게 벌을 내리시겠지만...
제가 오늘 누구를 죽인다면 하나님께서 제가 반드시 벌을 받도록 하시고 징역, 사형 등 이 땅에서 어떤 형벌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한 벌을 저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옥에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옥에 가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갖고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나쁜 일을 하고도 천국에 간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천국에 갔을까요? 너무 선한 사람이어서?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 "더 선한 삶"을 살거나 혹은 정말 "더 선한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죄에 대한 형벌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신뢰할 것
한가지만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들 중 한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어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누가복음:)
좋은 질문입니다. 그렇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받을까요? 아니면 소수만 구원을 받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마태복음 장에 나와있습니다.
(마태복음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태복음 :)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먼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여기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심지어는 그 분을 주라고 부르며 우리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했는데 왜 구원받지 못하냐고 묻는 자들이 많을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여러분을 구원할거라고 믿거나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혹은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교회를 다니고 모든 죄에서 돌이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행위를 신뢰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
그 분께서 하신 일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천국행 티켓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훌륭한 크리스천이고 많은 대단한 일들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너희를 안 적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한번 아셨다면 그것은 영존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한번 아셨다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면 그것은 그분이 여러분을 한번도 안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시면 영원히 아시니까요.
제 자녀들이 항상 제 자녀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태어나서 그 분의 자녀가 되면 영원히 그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집에서 말썽꾸러기일 수도 있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 크게 징계를 받는 사람이 되거나 인생을 망칠 순 있을지 몰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한번 구원받았다면 끝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저의 강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몇 분 시간이 남았는데 구원이나 마지막 때에 관한 질문이 있으면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지만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습니다. 저를 지금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옵소서. 예수님만을 신뢰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