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뒤에 (After the Tribulation i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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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1, 2015

(에스겔 :) "그러나 칼이 임하는 것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칼이 임하여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을 취하면 그는 자기

불법 가운데서 제거되었거니와 그의 피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요구하리라."

년 월 일 화요일 이른 아침입니다.

- 정말 상쾌한 아침이네요. 그렇죠? - 완벽한 가을 아침입니다.

년 월 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자유인들의 땅"은 이제 "노예들의 땅"이 되었고...

한 때 찬란했던 미국의 국민들은 안보를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계획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년 월 일. 치욕의 날로 기억될 이 날 미합중국은 고의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 날, 그 치욕의 날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 사라지지 않는 많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이 결국 우리를 단일세계정부로 이끌 일련의 사건들을 촉발시켰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반역으로 이 전쟁을 일으켰으나 우리는 반드시 승리로 이 전쟁을 끝낼 것입니다.

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고 단일세계정부를 향한 움직임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매 번의 전쟁을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검문소들이 생겨나고 있고 경찰국가는 미국 국민들에 대한 통제를 점점 더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에는 앞으로 언젠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표"를 받아야만 매매를 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체제가 붕괴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현금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올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미 실현되고 있는 중입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부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악한 사람들은 "신세계질서"의 수립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급속히 다가오는 것과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우리 미국의 헌법을 파괴하고 세계정부체제 수립을 조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조지 H. 부시: ...그것은 원대한 생각입니다...

- 조지 H. 부시: 신세계질서... - 이 모든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다큐멘터리가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사탄이 배후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수 있도록 "단일세계정부"와 "단일세계종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또한 현대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을 속여서 "대환난이 오기 전에 이 땅에서 사라진다" 는 믿음을 심어 놓았습니다.

이 "환난 전 휴거"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무 때나 돌아올 수 있고, 그 징후가 전혀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 교리에 속아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성경이 경고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마태복음 장 등에서 휴거의 시점이 "환난 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 설교자들, 신학교들, "남겨진 사람들"과 같은 유명한 영화는 대중들에게 휴거가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한번도 직접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극소수만이 "환난 전 휴거"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거짓된 교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환난 전 휴거"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교리라면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환난 뒤에" (After The Tribulation)

저는 Tempe, Arizona에 위치한 "Faithful Word 침례교회"의 목회자 Steven Anderson이라고 합니다.

저는 "환난 전 휴거" 교리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교리적 입장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성경을 살펴보고 사실을 직시한다면...

"환난 후 휴거"라는 분명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Sacramento, California에 위치한 "Verity 침례교회"의 목회자 Roger Jimenez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성장했고 제 평생 동안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배워왔습니다.

이에 대해 한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설교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고 저는 당연한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접하면 접할수록 얼마나 비성경적인 교리인지를 알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서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비교적 새로운 교리입니다. 년 이전에 누군가 이 교리를 가르쳤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년은 교회사에서 매우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수천년동안 종교개혁을 거쳤고...

마틴 루터, 존 칼빈 등 우리가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각양각색의 신학자들이 있었고...

년 이전에 기록된 수천권의 책과 논문과 글들과 수많은 설교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제 말은 어떤 교단의 어떤 사람도, 어떤 종류의 기독교에서도 이 교리를 가르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측면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환난 전 휴거" 교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환난 전 휴거" 교리의 초기 신봉자 중 한 사람은 존 넬슨 다비라는 인물입니다.

년대 그는 "비밀 휴거"라는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성경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그 번역본엔 전체 구절들이 삭제되고, 중요한 성경적 교리가 왜곡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주요 단락이 수정되어 있었습니다.

"현대 세대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존 넬슨 다비는 세기 내내 자신의 "환난 전 휴거" 이론을 전파했습니다.

그 이후 "환난 전 휴거" 교리는 침례교도들 사이에서 대대적으로 수용되는데...

바로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출간한 이후부터입니다.

이 관주성경에 다비의 "비밀 휴거" 교리를 지지하는 관주와 주석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주석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환난 전 휴거" 교리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진리인양 받아 들이게 됩니다.

마귀는 이 "스코필드 성경 관주 체계"라는 도구를 사용해 "환난 전 휴거" 교리를 전파시킨 것입니다.

어디서 나온 교리인지 알고 싶으세요?

바로 이 책을 통해 교회로 들어왔고 이 책을 통해 목사들이 그 교리를 배운 것입니다.

이 책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에서 나온 교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지 않은 스코필드의 입에서 나온 교리입니다.

스코필드 주석은 환난 전 휴거를 언급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교리인양 믿게 만듭니다.

사실은 전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는 교리인데도 말입니다.

스코필드 주석성경이 수 많은 신학원과 신학교로 보급되고 있고 수 많은 젊은 설교자들이 읽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환난 전 휴거" 교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휴거의 임박성"에 대한 소설화 작업도 Don Thompson의 영화를 통해 년대 관중들에게 파급력을 갖게 됩니다.

"...갑자기 그리고 예고 없이 수천명 어쩌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몇몇 목격자들의 증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어제 밤 지구에 살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아침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Thompson 감독의 부작 스릴러물은 당시 십대들에게 이 교리를 주입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개봉 이후 약 억명 이상의 관중이 "밤의 도둑"이라는 영화를 관람했고...

년 Tyndale House 출판사는 Tim LaHaye와 Jerry Jenkins가 지은 묵시론적 소설 "남겨진 사람들"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 시리즈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내용을 묘사한 것으로...

아무도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자동차들이 서로 추돌하며,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조종사가 사라졌기 때문이죠.

이 영화를 통해 "환난 전 휴거"가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내용을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는데...

엉터리 영화입니다.

영화 "남겨진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천백만 부가 판매됐고 현재까지 권의 후속 시리즈 소설물과 편의 각색영화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휴거에 대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장은 휴거와 관련된 중요한 본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장에서 휴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본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이 휴거에 관한 내용이라는데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명백하게 예수님께서 구름 가운데 오시고 우리가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들려 올라간다고 가르치는 부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이 본문의 의미는 크리스천들, 죽어서 예수님 안에 잠든 자들,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모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들에 대해 모르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구원 받았던 너희들의 사랑하는 자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알기 바란다...

그들을 다시 한 번 만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들을 데리고 오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장례식에서 이 본문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 역시 장례식에서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았습니다.

매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세상을 떠난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전서 :)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문맥을 보면 "위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다시 볼 것이다. 너희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데려오실 것이다."

"그들은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해에서 탈출하고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니 위로하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환란을 통과하지 않고, 고난을 겪고 고생을 하지 않으니 위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문맥에 환난이 언급이라도 되었습니까? 환난에 대한 어떤 내용이라도 언급되었나요?

아닙니다. 환난을 절대 통과하지 않을 것이니 서로 위로하라,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니 위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환난 전에 휴거가 될 것이니 서로 위로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을 보면 휴거의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다른 성경 본문에 나와있는 휴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휴거’라는 사건의 구성요소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절을 보면 “주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해해야 할 휴거의 특징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번째 특징입니다.

주께서 내려 오시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있고, 그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이 표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따라서, 데살로니가전서 장에 따른 휴거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님께서 내려오신다

. 나팔 소리가 난다.

. 우리가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만난다.

마태복음 장으로 돌아가서 -절에 있는 정확히 똑 같은 특징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저는 가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뒤에(after)”라는 말의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태복음 :)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람의 아들" 이란 표현은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자신을 가리키던 호칭입니다.

(마태복음 :)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

휴거의 똑같은 특징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고, 나팔 소리가 나고,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선택 받은 자들을 모으십니다.

이걸 보여드리는 이유는 마태복음 :-이 휴거라는 것을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서이며...

이 본문을 데살로니가전서 :-과 비교하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잡아둔 상태에서 마가복음 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장은 마태복음 장과 거의 똑 같은 내용입니다.

이런 걸 “평행 본문”이라고 합니다. 이 두 곳에서 똑같은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본문을 나란히 놓고 보셔도 됩니다. 똑 같은 내용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가복음 :입니다.

(마가복음 :) 그러나 그 날들에 그 환난 뒤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마가복음 :)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가복음 :)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 또 그때에 그가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땅의 맨 끝 지역에서 하늘의 맨 끝 지역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

자, 이제 기도하고 집에 가면 되겠네요. 성경책 덮고 “자, 여러분. 여기 나와있잖아요. 휴거는 환난 뒤에 일어납니다.” 결론내고 집에 가면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성경책 덮고 집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이 본문이 휴거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과 휴거가 “환난 뒤”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증명해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공격하면서 “마태복음 장은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걸로 교리를 삼을 순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아, 그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어디 있는 어떤 학자가 마태복음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고, 마가복음은 로마인에게만, 누가복음은 그리스인에게만, 요한복음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거라고 정해 놓기라도 했나 본데...

사복음서 중에 하나라도 우리에게 해당되게 해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드릴 일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정해 놓았습니까?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맞춰서, 누가복음은 그리스인들에게 맞춰서, 에베소서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맞춰서 기록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서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맞춰서, 데살로니가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에 맞춰서 기록되었는지 모르나...

이 책의 모든 약속은 내 것이며, 모든 장과 절을 나를 위해서도 주신 것입니다.

디도서는 디도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목사들과 신자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신약성경입니다!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이 예수님의 설교 자체가 유대인들에 관한, 유대인들을 향한, 유대인들을 위한 설교라구요."

"예수님의 올리브산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므로..."

올리브산 설교(Olivet Discourse)란 마태복음 장, 마가복음 장 등 이 본문을 가리키는 신학적 용어입니다.

"...목사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만 말씀하고 계셨던 거라구요. 이해가 안되시나요?"

"마가복음 :에서 '환난 뒤'라고 말씀하신 것과 그 뒤 절에서 예수님께서 구름들 가운데서 오신다는 말씀..."

"...그리고 절에 선택 받은 자들을 땅의 맨 끝 지역에서 하늘의 맨 끝 지역까지 모은다고 하셨을 때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하셨던 겁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 장 마지막 절을 봅시다.

마가복음 :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만 말하는 것이다.

어떤 설교자도 이 말이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라고 속이지 못하게 해라.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다.

마가복음 :에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장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한 말씀이 아니야.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라고.”

마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걸 미리 아시기라도 한 것처럼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너희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마가복음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종종 마태복음 :-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휴거처럼 보이고 휴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휴거는 아니다.”

휴거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절에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모으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선택 받은 자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장은 휴거가 될 수 없고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마태복음 장 전체가 유대인들만을 위한 말씀이다. 선택 받은 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항상 성경이 특정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택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목록입니다.

시간관계상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선택 받은 자들”이란 표현은 매번 “구원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는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선택 받은 자들”을 “유대인” 또는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이유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대신 주석서와 사람들이 쓴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고...

그 책에서 사람들이 정의한 “선택 받은 자들”의 의미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스코필드 주석성경 마태복음 장 관주에는 “선택 받은 자들”이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 해석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교리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합니다.

“선택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성경을 공부해보면 유대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을 잠시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셨음을 아노라.

이방인들이 분명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장에서도 같은 표현을 본적이 있습니다.

(로마서 :)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성경에 번 언급된 “선택”(elect)이라는 표현이 번은 일반적인 신자들을 의미하고...

번은 구체적으로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켰으며...

번은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키고...

번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나머지 번은 야곱이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택 받은 자들”이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구절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선택 받은 자들? 그건 이스라엘. 유대인이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은 자기가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였으나 선택 받은 자는 얻었고 그 나머지는 이 날까지 눈멀게 되었으니

성경은 이스라엘은 갖지 못했고 선택 받은 자는 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선택 받은 자들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매우 명백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정의하고 해석한다면, “선택 받은 자들”은 유대인이 아니며 “이스라엘” 국가가 아닙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소아시아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리스인일 수도 있으며, 바바리안 등 어떤 부류의 사람들도 “선택 받은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 사람으로 옷 입었다면 “선택 받은 자들”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장에서 예수님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모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자들의 휴거"를 말씀하신 본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또는 흑인이냐 백인이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선택 받은 자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구름들 속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모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믿는 자들이 채여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까?

같은 장 조금 뒷부분에는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일이 일어날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이게 올해 월 몇 일에 일어난다.”와 같은 예측은 할 수 없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사람은 남게 되며

(마태복음 :)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여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여자는 남게 되리라.

(마태복음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는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깨어서 지켜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 날과 그 시각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이 “환난 뒤”라는 사실은 알려주셨어요.

왜냐하면, “환난 뒤에”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그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들 가운데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가 나팔이 울리는 때이며 신자들이 채여 올라가는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른다고 해서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전에 “환난 뒤에”라고 이미 말씀을 하셨다는 것지요.

이 내용은 마태복음 장, 마가복음 장, 누가복음 장, 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이 내용을 다루죠. 네 사람 모두 이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환난이 오고, 그 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구름과 함께 재림하시면서 휴거가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휴거가 환난 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환난”과 “하나님의 진노”를 구분하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환난과 전혀 별개의 사건이라는 증거 중 하나는 마태복음 :입니다.

(마태복음 :)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마태복음 장에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이 “환난 뒤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 :으로 가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시점을 찾아 보면 (여섯째 봉인이 열릴 때)...

(요한계시록 :) ...해는 머리털로 짠 상복같이 검게 되고 달은 피같이 되며... - 마태복음 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 :)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릴 때에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요한계시록 :) 하늘은 두루마리가 함께 말리는 것 같이 말려 떠나가며 모든 산과 섬도 그들의 자리에서 옮겨지매

(요한계시록 :)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부자들과 총대장들과 용사들과 모든 남자 노예와 모든 자유로운 남자가 동굴과 산들의 바위들 속에 숨고

(요한계시록 :)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왕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기라

(요한계시록 :)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자, 이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시작됩니까?

해와 달이 어두워질 때가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다”고 말하는 때입니다.

현재시제로 “이르렀다”(is come)이며, 지금 방금 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장에서 해와 달이 "환난 뒤에"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진노는 해와 달이 어두워지기 전까지 시작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둘이 같은 사건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는 해와 달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환난 전 휴거” 관련 성경구절을 보여달라고 하면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저는 누구든 자신 있으면 “환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구절로 “환난 전 휴거” 교리를 증명해 보라고 합니다.

아무도 증명 못합니다. 아마 "진노"라는 단어가 들어간 구절을 보여줄 겁니다.

우리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고, 진노에 이르도록 정해지지 않았다,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구절들을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는 “자, 보세요. 성경엔 우리가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잖아요.”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환난과 진노는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환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환난 전 휴거” 교리를 증명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된 구절을 보여 주겠지만...

하나님의 진노와 환난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사건입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교회와 그들이 읽는 책을 통해 이 둘이 같은 사건이라고 배웁니다.

“우리가 환난을 통과하고 휴거는 환난 뒤에 일어난다.”고 말해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퍼붓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노에 이르도록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진노로부터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하나님의 진노가 환난과 같은 사건입니까?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환난”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한다면 휴거가 환난 뒤에 온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환난”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에 환난이 년이라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 분의 진노를 퍼부으시고...

불과 유황을 내리시며 물을 피로 바꾸시고 전갈과 다른 모든 재앙을 내리시는 기간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성경이 가르치는 환난의 의미가 아닙니다.

“환난 전 휴거” 즉, 휴거가 환난 전에 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일이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환난 전 휴거”(pre-trib rapture)라는 말을 풀이해봅시다.

이 말에는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죠? "pre"는 "~전”이라는 뜻입니다.

"trib"은 환난을 의미하죠. 그리고 “휴거”(rapture)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에는 없는 표현입니다.

휴거의 개념은 성경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들 속에서 오시고 사람들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죠.

따라서 휴거의 개념은 있지만 “휴거”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환난”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있나요?

“환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모두 찾아보면 신약성경에서 회 사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환난”이라는 단어가 회 사용되었고, 모든 사람이 이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믿고 있다면...

적어도 이 개 구절 또는 개 문맥이나 장에서 휴거가 환난 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중 단 한번도 휴거가 환난 전에 발생한다거나 그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에 의존해야 하고...

또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또 그 설명은 항상 매우 장황합니다.

제가 성경에 대해 알고 있는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장난치시거나 혼란스럽게 하시거나 쉬운걸 어렵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니까요.

많은 경우, 성경에서 무언가가 처음 언급되는 곳에서는 그에 대한 정의도 같이 내려주셔서 우리의 이해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그 표현을 두 번째 볼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죠.

마태복음 :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만 견디는 자니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그가 곧 실족하느니라.

"환난"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나와 있나요? "핍박"입니다.

말씀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난이나 핍박”

너무 나쁜 사람들이라서 환난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있기 때문에 환난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핍박과 환난을 겪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은 것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으면 핍박과 환난이 와도 견뎌냅니다.

보시다시피 성경에 처음 “환난”이 언급된 곳에서 “핍박”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것이 신약성경에서 “환난”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용례이며...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환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을 찾아보면...

그 중 %는 신자들이 환난을 통과한다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구원받은 사람들이 환난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 아닌 나머지 두 번의 용례는 마지막 때의 예언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환난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통과해왔고, 지금 우리 세대도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환난이 우리 생애에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에 일어난다면 신자들로서 그것을 겪어낼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이 기간을 통과해서 휴거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환난이 다섯 번째로 언급되는 곳은 요한복음 :입니다.

(요한복음 :)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신자들, 즉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을 피하게 될 것이다. 환난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나요?

“내 백성을 너무 사랑해서 절대 환난을 통과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닙니다! 마태복음 장의 “환난”의 첫 번째 용례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지 못하면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핍박이 올 때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절에 예수님께서 환난에 대해 뭐라고 경고하셨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내가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즉 예수님께서 앞으로 우리 인생에서 겪게 될 다가오는 핍박과 환난과 시험에 대해 미리 알려주고 경고해 주시지 않으면...

그 때가서 우리가 놀라고 실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만요. 이 설교가 저를 좀 실족하게 하는데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실족하는 걸 막아주는 설교입니다.

이 일이 오는걸 안다면 우리가 실족하지 않을 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절을 보세요.

(요한복음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그때가 올 때에 내가 너희에게 이미 그것들을 일러 주었음을 너희가 기억하게 하려 함이라. 또 처음에 내가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니라.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생길 때 예수님께서 미리 일러 주셨음을 기억할거라 말씀하시는 것이며...

저는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을 여러분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시작될 때 – 우리한테 일어날 수도 있고 앞으로 년 뒤일 수, 불과 몇 년 후 일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그 일들이 생기면 여러분은 제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걸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다음으로 “환난”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사도행전 :입니다.

(사도행전 :)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며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이는 매우 구체적인 진술문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데...

그것은 환난을 거치는 것이지, 환난 전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환난 전에 다 휴거될 터이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나요?

아닙니다. 확실히 하라는 것이며, 그들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몇 가지 문제들을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어떤 환난 전 휴거 교리를 찾아볼 수 있나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 내가 너희를 향하여 심히 담대히 말하고 또 너희를 크게 자랑하노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도 내게 위로가 충만하고 기쁨이 크게 넘치는도다.

“나는 환난을 겪지 않을 것이므로 기쁨이 크게 넘치는도다.”라고 말하지 않고...

“환난 전에 우리가 휴거 될 것이니 매우 기쁨이 넘친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도 내게 기쁨이 크게 넘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환난 전 휴거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 전반에 걸쳐 “환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때...

많은 경우 신자들에게 환난을 통과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도…”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자들이 통과하지 않은 무언가가 아니라 신자들의 전 삶에 걸쳐 겪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신자들은 환난을 겪어 왔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속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설교자들이 여러분을 속여왔습니다. TV 쇼와 영화가 “남겨진 사람들”(Left Behind)과 같은 영화로. 여러분을 속여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속이시지 않습니다.

성경 자체 내장 사전으로 성경을 정의한다면...

“환난”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환난은 핍박, 고난, 고통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환난"의 번의 용례 중에서 한 구절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환난 전에 다 사라진다는 성경 구절 하나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환난 전에 채여 올라간다거나 환난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기록된 구절을 단 한 구절만이라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경에서 명백하게 "환난 직후에" 예수님께서 구름들 속에서 오시고, 나팔 소리가 나고...

...선택 받은 자들이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간다고 기록된 말씀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복잡한 해석과 논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음, 우리가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른다는 말은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아무 때나 일어나려면 환난 전이어야만 해요.”

아니면 복잡한 차트를 보여주면서 설명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가감 없이 기록된 그대로 마태복음 장에서 시작해 마태복음 장까지 읽으면 거기에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환난 뒤에” 예수님이 구름들 속에서 오시는 것입니다.

켄트 호빈드 박사는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년 동안 믿고 가르친 매우 유명한 복음전도자입니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성경책을 읽고 환난 전 휴거 교리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이유로 입장이 바뀌었는지, 무엇 때문에 휴거가 환난 뒤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제 이름은 켄트 호빈드이며, 과거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년을 근무했고...

그 뒤 년 동안 복음전도자로 창조와 진화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 동안 제가 갖고 있는 마지막 때에 관한 시각과 그것이 성경적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약 년 전에 제 평생 배워왔던 교리가 사실과 다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 진영에 있는 제 형제들은 많이 당황했지만 저는 “환난 후 진노 전 휴거”로 바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창조와 홍수 다가올 심판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게 될 것”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저는 지난 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창조와 홍수에 대해서는 가르치면서도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는 회피해 왔습니다.

저도 잘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죠.

마태복음 장은 제자들이 분명하게 여쭈어본 “재림의 표적과 시기”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마가복음 장과 누가복음 장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개 평행 본문을 모두 복사해서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는데...

모든 세부 내용들을 확인해 본 결과 “환난 전 휴거” 개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 졌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다고 보십니까?

왜 이 교리가 만연하게 되었을까요?

부끄러운 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공룡에 대해 답변할 수 없게 되자 “간극 이론”을 만들어 내서 거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저는 “환난 전 휴거”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닥칠 환난이 전무후무한 환난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죠.

스페인 종교재판이나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나 가혹했다고 생각하세요?

로마의 그리스도인 박해가 더 심했다고 생각하세요?

이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와. 놀랍습니다.

세상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악한 자가 선한 자를 죽이는 것이죠. (창세기 :)

맞습니다.

역사적으로 계속 그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핍박할 때 크게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왕국에서 우리의 보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환난”의 성경적 정의를 취한다면, 지금과 같이 왜곡된 의미가 아닌...

우리가 실제로 환난의 성경적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가 지금 환난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환난”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며 이미 지난 수 천년 동안 있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 환난을 인내로 견뎌낼 때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이 수업이 “종교적 극단주의”에 관한 것이므로 어떤 사람들의 시각엔 이러한 주제도 그 범위에 속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실제적으로 끝이 온다는 주제인데 즉, 앞으로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따라 앞으로 발생하게 될 사건들이 모두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말 그대로 계시하시기 위해 즉, 감추지 않고 드러내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위장과 기만의 책이 아닙니다. 계시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책이 쉽게 이해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장 첫 부분에서 요한이 밧모라는 섬에 있었고 복음 선포를 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로 볼 때 그리스도의 당시 또는 그와 비슷한 시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뒤 한 세기가 채 안 지난 시점입니다.

그 후 요한에게 나타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 계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메시지를 주시는데...

이 일곱 교회는 주후 세기 당시 실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그 후 -장에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한 환상을 봅니다.

그 뒤 장에서 환난 기간의 사건들이 시작되고...

장에서는 하늘에 큰 무리가 나타나는데, 명백한 휴거 장면으로, 모든 민족과 족속들이 등장합니다.

그 후 -장에서 하나님께서 땅 위에 진노를 쏟아 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은 삽입 장으로 일곱째 나팔 전에 일어날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해 관한 내용입니다.

장에서는 일곱째 나팔이 울립니다.

즉, 계시록이라는 책을 보면 첫 장은 시간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당시의 시대인 세기에서 출발해...

환난, 휴거, 하나님의 진노와 같은 미래 사건들로 접어들고...

장에서 일곱째 나팔 소리가 나면 일종의 결말이 나오는데...

하늘에서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장 끝에서 결말이 나오는데 장에 가면 계시록이라는 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장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나니라. 한 여자가 해로 옷 입고 있는데 그녀의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열두 별의 관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 그녀가 아이를 배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가운데 울부짖으며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더라.

(요한계시록 :)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나니라. 보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이 있는데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개의 관이 있으며

(요한계시록 :) 그의 꼬리가 하늘의 별들 중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내던지더라. 용이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곧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라.

이제 절을 주목하십시오.

(요한계시록 :) 그녀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그녀의 아이가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아이는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에서 반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장으로 이 땅을 다스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가리키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장에서 반으로 쪼개서 -장을 하나로, -장을 다른 하나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눠서 나란히 놓고 보면 두 개의 시각에서 같은 사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걸까요? 계시록에서 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하시는 걸까요?

왜 복음서를 개 주신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무엘기를 주시고 열왕기를 주셨는데 또 역대기를 주신 것은 다른 각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비교하면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이해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 순서를 이해하면 계시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이 전혀 시간 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 일 뒤에” 또는 “이 일들 뒤에”라는 표현이 계시록에 번 나옵니다.

“이 일 뒤에” 또는 “이 일들 뒤에”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건의 순서를 알려주신다는걸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 일 뒤에” 라는 표현을 보면서 시간 순서가 아니라고 이해하거나 읽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그게 성경을 읽는 방법입니다.

재미있는 예를 들겠습니다. 요한복음 :입니다.

(요한복음:)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오나니 이것은 자기 행위와 또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절은 이렇습니다: “이 일들 뒤에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유대 땅으로 들어갔고…”

절에 “이 일들 뒤에”라고 나와 있는데 “절은 사실 절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죠.

우리는 당연히 그런 의미로, 그렇게 쓰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가서는 번이나 “이 일들 뒤에”, “이 일 후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간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니에요. 앞뒤가 안 맞아요.”라고 말합니다.

그건 성경을 올바르게 읽고 공부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장에서 같은 내용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알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일부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마지막 때의 사건들의 순서를 알아보겠습니다.

이 일들은 우리가 다 죽은 뒤 앞으로 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저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평균 수명으로 산다는 가정하에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살인데 지금의 속도로 일이 진행된다면 앞으로 년 안에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죠.

오늘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제가 하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겁니다.

처음 시작은 환난입니다.

성경에는 마귀 곧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난다고 나와있습니다.

어떤 분은, “잠깐만요. 목사님, 그건 이미 일어난 일 아닌가요?”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사람들은 마귀가 지금 지옥에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직 지옥에 한 번도 가본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매우 분명하게 마귀가 이 땅 위에서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마귀와 그의 천사들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땅과 하늘을 오가며 하나님과 대화도 합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마귀가 와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종 욥에 대해 하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억하시나요?

현재 마귀는 하늘과 땅을 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미래에 마귀가 어떻게 하늘에서 쫓겨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하늘에 전쟁이 있더라.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우매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요한계시록 :) 이기지 못하고 또 하늘에서 자기들의 처소를 더 이상 찾지 못하더라.

(요한계시록 :)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요한계시록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권능이 임하였도다.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는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자가 쫓겨났도다.

(요한계시록 :)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 그러므로 하늘들과 그것들 안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즐거워하라.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귀가 자기 때가 조금만 남은 줄 알므로 크게 진노하여 너희에게로 내려갔도다, 하더라.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늘에 전쟁이 있고 마귀가 이 전쟁과 전투에서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기 때문에 마귀와 그의 천사들, 이 본문에 따르면 전체 천사의 /에 해당되는 천사들이 땅으로 내쫓긴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기는 모습이며...

자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자들과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이러 가는 것입니다.

장을 보십시오. 그 전쟁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그렇죠?

요한계시록 :에서 성도들과 전쟁을 하려고 나갔으니까요.

전쟁은 어떻게 할까요? 마귀가 어떻게 신자들과 전쟁을 치릅니까?

예언의 시간표 상, 이 일 다음에 발생할 일은 “환난”입니다.

환난은 땅 위에 여러 재앙이 발생하는 기간입니다.

기근, 질병, 엄청난 전쟁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수 많은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환난 기간에 일어나는 이 모든 전쟁과 대격변은 초자연적 대격변이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불과 유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재해나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전쟁과 기근 같은 것입니다.

이 때 “적그리스도”로 알려져 있는 한 사람이 전세계에 독재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발생할 일입니다. 사실, 벌써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를 이미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앞으로 언젠가 “단일세계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지금은 여러 다양한 정부가 존재합니다. 그렇죠?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모두 각각 주권을 지닌 국가들입니다. 주권국가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런데 성경은 앞으로 언젠가 이 모든 주권 국가들이 하나로 연합해 “단일세계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단일세계정부가 수립되면 모든 국가가 한 사람 즉 세계정부의 수장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라는 인물입니다. 적그리스도라는 말 들어보신 분 손 들어보세요.

네. 다 들어보았네요. 적그리스도는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성경에서 자주 짐승, 바다에서 일어나는 짐승,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지만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이자 성경적 용어이니까요.

성경에서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나오는 곳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언젠가 이 적그리스도라는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가장한 가짜 그리스도가 오는 것입니다.

이해 되시나요?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재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다시 오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완벽히 속는 것입니다.

실제로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죠.

성경은 왜 적그리스도라고 할까요? 적그리스도(단수)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난 기간 동안 그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들 가운데 오시면 유대인들이 결국 그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분을 영접할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저는 "환난 전 휴거" 교리를 통한 사탄의 계략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다시 올 수 있다. 오늘이라도 오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먼저 오는 것은 적그리스도라는 것이죠.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면 단일세계정부와 단일세계종교의 수장이 되어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일서 :)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단수)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나니 이로써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

앞으로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같은 절에서 지금 현재에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있다고 나와있지 않습니까? 이 적그리스도들은 누구일까요?

(요한일서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거짓말하는 자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니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믿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 두 단어는 호환이 가능합니다.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메시아가 오긴 오는데 그는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혹시 있나요?

유대교에서는 앞으로 메시아가 오지만 예수님은 그 메시아가 아니었다라고 가르칩니다.

아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죠.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올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들이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오실 수 있다고 믿는 구원받지 못하고 진리를 믿지 않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많은 사람들도 속아서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슬람교도 모하메드 보다 더 뛰어난 위대한 대언자, 위대한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란의 아흐마디나자드 대통령에 대해 들어보신 분?

아흐마디나자드 대통령은 -년 전 UN총회에서 이슬람 종교에 대한 개요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대언자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하나로서 같은 내용이다...

모든 대언자들은 그 전에 온 대언자를 인정하고 그 후 등장할 대언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

다음에 오는 대언자는 그 당시 대중의 이해와 상황에 맞는 더 완전한 종교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한 종교의 완성을 제시할 신의 마지막 대언자가 등장할 때까지 지속된다.

님롯은 아브라함을, 파라오는 모세를, 탐욕스러운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모하메드를 대적했다. 모든 우리 대언자들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아흐마디나자드 대통령은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대언자였고 그 뒤 모하메드가 왔다는 것이 이슬람의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슬람 신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제가 맞게 말하고 있나 봅니다.

아흐마디나자드 대통령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이 준비되는 정도에 따라 각 대언자가 그 전 대언자보다 더 많은 진리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조명을 가져오고 더 세부적인 진리를 전달했다는 것이며...

앞으로 또 다른 대언자가 오는데 그는 모하메드보다 더 위대해서 다음 단계의 조명과 빛을 가져온다는 것이며...

이슬람은 이 메시아적 존재인 "이맘 마흐디"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 신이시여, "이맘 알 마흐디"가 속히 올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그에게 건강과 승리를 허락하시고 우리와 그의 정의를 믿는 이들이 그를 따르도록 도와 주소서.

불교도들도 다섯 번째 부처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 추종자들은 달라이 라마의 영혼이 계속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다고 믿습니다.

그들도 적그리스도가 달라이 라마의 새로운 화신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슬람 교도들은 적그리스도를 이맘 마흐디로, 크리스천들은 그를 재림한 그리스도로,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모든 주요 종교들은 그 옆에 달려가 모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결국 하나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의 차이점들을 극복하게 해주니 이 사람 정말 놀랍지 않은가!” 라고 말하며 이 사람을 경배할 것입니다.

이 가짜, 이 적그리스도가 오면 세계정부는 그를 수장으로 세우고 모든 권력을 넘겨준 뒤에...

그를 하나님으로, 재림한 그리스도로 선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는데 성경에는 그가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나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살아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 육체를 입고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모든 국가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를 메시아로 받아 들이나 성경에는 구원받은 자들은 그에게 속지 않을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경배하고 믿을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이러한 모든 표적과 이적들을 행하고 세계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단일세계정부에 대해 경고하고 지금의 “현금 없는 사회”로 움직이기 위한 흐름들에 대해 경고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단일세계정부, 현금 없는 사회, 수 많은 검문소들, 경찰국가 등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음모론자”로 몰아 세우곤 하는데...

박사님도 분명히 음모론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네. 많이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이 단일세계정부가 세워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사탄의 항상 세상을 지배하고 단일 세계정부를 수립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놓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전세계를 지배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짐승의 표”라는 것을 받도록 명령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

성경엔 짐승의 표가 오른 손이나 이마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것이 없으면 아무도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수백년 전 사람들은 이 내용을 읽고 이런 의문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어?"

"그냥 현금 꺼내 쓰면 되는 것 아니야?”

그런데 현재 기술을 보세요. 제 손에 들고 있는 이 돈, 연방준비권은 단순히 종이 조각에 불과합니다. 아무 쓸모가 없는, 내재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금 사용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형태의 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이 돈은 이제 과거의 유물인가요?

미국에서 일어나는 거래의 % 이상은 종이 화폐나 동전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돈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혹시 해보셨어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곧 예상해야 할 현실이라고 합니다. 지폐와 동전은 이제 불편해 졌기 때문이죠.

현재의 경제를 현금 기반 경제체제에서 현금이 없는 경제체제로 바꾸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는 은행, 통신사, 현금자동인출기와 POS 단말기 공급자와도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일입니다.

요즘 무엇을 돈이라고 부르시나요? 동전과 지폐입니까?

아니면 신용카드가 이를 대체하고 있나요? 수표와 같은 특정 형태의 돈은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가게에서 도난 카드나 부도수표 등 금융사기 문제 때문에 현금, 수표,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땐 전자적 형태의 거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사실상 종이 화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종이 조각일 뿐이죠. 장난감 돈이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금이나 은이 아니에요.

아무런 내재적 가치가 없습니다. 정부는 우리가 이렇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 돈을 사용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오늘날 이 종이 조각으로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지만...

내일이라도 정부에서 “그 돈은 이제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발표하면 그 순간 가치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 남부연합”과 “남부연합 화폐”를 기억 하시나요?

사람들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 쌓아 놓던 남부연합 화폐는 갑자기 가치가 사라져 버렸어요.

지금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종이 화폐는 이제 아무 소용 없다. 이제 계좌에 있는 금액만 유효하고, 모든 돈은 페이스북, 유투브, 지메일 계정과 연계된다."

얼마나 좋습니까? 신분을 도용당할 위험도, 집에 지갑을 놔두고 와도, 신용카드를 도난 당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금이 완전히 필요 없는 사회니까요.

마약 거래도 규제할 수 있습니다. 현금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공상과학에서만 보던 기술이 "신속함과 편리함"이라는 목적으로 계산대에 도입되기 직전입니다.

상점에 최종 신분 확인만 해주면 빵에서 맥주까지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너무 무서운 현실입니다.

식료품을 스캔하고 검지 손가락을 판독기에 갖다 대면 초 안에 손가락 하나로 계산이 끝납니다.

생물측정학(biometrics)라고 하는 기술로 입력된 생체 정보를 통해 자동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런데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지문이지만 앞으로 소형 칩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으며 결국 짐승의 표로 대체될 것입니다.

Donny Attaway은 Quik Trip에서 편의점 관리직을 그만 두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지문으로 출퇴근 타각을 요구했기 때문이죠.

지금은 선택권이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생물측정학이 우리의 경제와 일상생활의 전 분야에 적용되기 직전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손가락만 넣으면 제 이름이 나오고 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빨리요? - 네. 아주 빠릅니다.

- 좋습니까? - 아주 좋아요.

전세계 사람들이 이미 생물측정학 기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항공사, 주유소, 심지어는 디즈니월드 마저도 고객들의 혈관을 판독하는 방식으로 일일입장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단일세계정부”는 너무나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도록 독재권력을 휘두를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킹제임스성경에는 분명하게 이 짐승의 표 즉, 매매를 위해 필요한 표의 위치가 "오른 손"이나 "이마 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식 가능한 형태의 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는 그 칩을 스캔만 하면 되는 것이죠.

앞으로 이렇게 말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짜리 종이 돈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 이제는 스캔해서 지불해야 돼. 이젠 전자로 다 바뀌었다고.”

식료품점에서 계산대에 식료품을 올려 놓고 “삑”하고 지불하는 것입니다.

손이 없다구요? 문제 없습니다. 머리로 하면 되니까요. 누구나 머리는 다 갖고 있습니다.

계산대에 가서 머리로 이렇게 “삑”라고 지불하면 됩니다. 모든 돈은 전자적 형태를 띄게 될 것이며...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에도 스캐너가 장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두 사람이 재화와 용역을 교환한다고 합시다.

자.. $.이네요. 오른 손 주세요. 제 스마트폰으로 스캔할게요. “삑”. 돈을 이체 받았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셨군요.

레슨비를 드릴게요. “삑”

생각해 보세요. 스마트폰으로 짐승의 표를 스캔하고 그 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가 없는 현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밤 의학 뉴스에서는 쌀알 만한 크기의 칩이 여러분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다는 소식을 보도 드립니다.

때는 년입니다. 무의식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고 신분증도 진료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피부 속에 이식되어 있는 소형 칩 안에 다 담겨 있군요.

년 전에는 공상과학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생물측정학 기술을 활용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생물측정학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 년 안에 지갑과 열쇠들 들고 다녀야 하는 현실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죠.

남은 과제는 이 멋진 신세계에서 우리의 사생활을 안전하게 보장받는 일입니다.

새로운 마이크로칩 기술 덕분에 응급실 직원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컴퓨터 키 하나로 조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응급실 외과의사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해 왔는지 어떤 알러지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존 할렘카 박사는 이 무선식별 칩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른 팔에 그 칩을 이식했는데 스캐너가 이 자리 인식번호를 읽으면 이 숫자를 진료기록이 저장된 보안 웹사이트로 전송합니다.

응급의료기술자 브라이언은 이 칩이 응급의료기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곤란한 문제 중의 하나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환자가 도착했는데 자신의 정보나 진료기록을 알려주지 못할 때입니다.

존 할렘카 박사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암벽을 등반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무의식상태인데 제 몸을 스캔해서 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사생활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쌀알만한 크기의 칩을 깨지지 않는 유리 안에 넣는 것입니다. 마취 하에 실시하기 때문에 시술 과정에 고통은 별로 없습니다.

뜨개바늘을 피부 밑에 이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피부 밑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년 뒤에 집 나간 고양이 한 마리가 다시 돌아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죠. "고양이 한마리를 되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엄마나 가끔 돌아다니다 사라지는 아빠를 위해 진료기록이 입력된 칩 하나를 삽입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또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고양이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 아기에게는 어떨까요?"

“어린이 유괴 경보 시스템이나 어린이 납치에 대한 공포는 이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이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다 하나씩 이식하는 것은 어때요? 그 칩에 다 넣는 거에요. 신용카드, 운전면허..."

"생각해 보세요. 교통카드 까지. 지갑도 필요 없고 키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집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묻고 싶은건 이겁니다. 과연 좋은 생각일까요? 앞으로 다가올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저에겐 너무 공상과학처럼 들려요. - 지금의 현실이에요.

현실이긴 하죠. 하지만 애완동물이나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거잖아요.

-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 아이는.. 아. 제발..

과거 사람들은 아마 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실현될까?

"어떻게 표가 없으면 매매를 못하게 할까?”

그러나 현재의 기술로 이 표 없이 매매를 못하게 하는 것이 매우 쉬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일 정도의 식량만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매매를 못하면 상당한 타격을 입게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나와 있다는 것이죠.

"이 사람 정말 대단해. 많은 위대한 일들을 하고 있어. 사람들을 연합시키고 있다고."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구호는 단 한가지입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사형"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할거야. 다 참수되겠지.”

성경에도 우리가 참수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참수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단서가 있어요. 이 일이 계속 지속될 경우에 한해서만, 네 맞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기술과 모든 곳에 설치되는 저 감시 카메라, 위성 카메라를 보세요.

경찰은 이제 카메라가 장착된 무인비행기까지 써가며 여러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감시용 무인비행기, 보신 적 있나요?

거리 구석 구석 마이크를 설치해서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반이상향적) 소설 “”와 비슷한 내용이죠.

그것이 현재 우리 미국이 가고 있는 “완전 감시사회”의 길입니다.

과거에는 그냥 비행기를 타곤 했지만 지금은 TSA(연방교통안전청)의 검색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알몸투시기를 거쳐야만 합니다.

투시기와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신분증을 항상 소지해야 합니다.

경찰은 항상 말합니다. “신분증 제시 바랍니다. 서류 제시하세요. 서류가 잘못됐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이 감옥과 같은 행성을 탈출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지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알아 두세요. 우리가 다 죽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참수되고 그리스도 때문에 처형 당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아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다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

성경에는 그 기간의 한중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좀 전에 다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 기억하시죠? 그 분께서 돌아 오십니다.

그들이 기독교를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때 사탄이 통치하는 세계단일정부를 수립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들 속에서 오십니다.

그 때가 바로 휴거의 때이며 예수님께서 땅 위에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때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내용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물을 피로 바꾸시고, 나무와 풀을 태워버리시며, 지옥에서 메뚜기들을 올려 보내 전갈과 같은 꼬리로 사람들을 쏘게 하시는 등...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인데 아직 안읽어 보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NIV는 읽지 마세요. 킹제임스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왕 시간 내서 읽으려면 진짜를 읽어야죠. 모조품은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성경에 따르면 용이 이 짐승에게 권능과 자리와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절을 보세요.

(요한계시록 :)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요한계시록 :) 그들이 그 짐승에게 권능을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그와 전쟁을 하겠느냐? 하더라.

(요한계시록 :)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여기서 “마흔두 달”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는 “일”과 모두 동일한 기간인거 아시겠죠?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자, 주목하세요. 절이 핵심입니다.

(요한계시록 :)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요한계시록 :에서 용의 목표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와 싸우러 가는 것임을 보지 않았습니까?

여기서는 성도들과 전쟁하여 - 자 주목하세요 -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성도들과 마귀의 전쟁에서 누가 이깁니까?

마귀입니다.

마귀가 성도들과 전쟁해서 이긴다고 나와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장에 따르면 적그리스도의 목표는 성도들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성도들이 짐승의 표를 받고 박해를 피하는건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참 암담하죠? 일단 끝까지 읽어보세요. 결국 누가 승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은 일시적인 패배입니다.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모든 민족들, 족속, 언어를 다스리는 권능을 가졌고 성도들과 전쟁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성경은 지구 상의 모든 자가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잠깐만요. 아닙니다.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묻겠습니다.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이 사람에게 경배할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너무 신뢰감을 주고 자연스러워서 가능하면 “선택 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사람들 중 아무도 이 자에게 속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비록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믿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런 일들이 시작되는 걸 볼 때 - 지금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깨달으면 더 좋겠지만 - 깨달을 것입니다.

“잠깐만. 이거 지금 일어나고 있잖아. 이 자는 적그리스도야. 이 표는 받으면 안돼. 이 사람을 경배해서는 안돼. 진짜 그리스도가 아니야.”

경배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또한 매매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약국 같은 곳에 가서 짐승의 표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체국에 가서 “제가 매매할 수 있게 칩을 좀 살 수 있나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해야 이 표를 받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몇 십년 전에 거짓말탐지기가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뇌를 촬영해 거짓말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저는 짐승의 표를 받으려면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적그리스도 하에서 충성서약까지 하게 해서...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상과학이 실현되었습니다. 미래의 기술이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뇌 단층 촬영을 통해 식습관 및 성생활 등 미래 행동 예측 가능

생각을 읽는 기계

이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교통은 극도로 통제되어 있어서...

고속도로에서 운전만 해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려면 연방교통안전청(TSA)의 알몸투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밀한 교통 통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짐승에게 머리를 숙이고 경배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사회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우리는 또한 비방을 당할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매우 분명하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신세계질서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치원생을 학교에 입학시키려는데 백신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거부 당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백신에 거부감이 있어서 “나는 백신이 자폐 등 다른 많은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잘은 몰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또한 몸 안에 독을 주입시켜서 더 많은 독에 항체를 생성한다는건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맞습니다.

실상은 학교에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입학이 불가하다고 할 때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소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세를 굽히고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는 쉬운 길로 갈 것인가?

짐승의 표도 똑같을 겁니다. 년 전 사회보장번호(SSN)를 발급할 때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숫자를 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름을 가진 존재라는거였죠.

그리고는 서서히 지금처럼 누구나 다 하나씩 갖고 있는 상황이 되었고 더 이상 그 문제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혹시 단일세계정부로 가기 위한 단계, 단계, 단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기고 자기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신자들, 성도들과 전쟁을 하러 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한 사람에게 권력을 줍니다. 그렇죠? 용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 사람을 통해 전세계 모든 족속과 언어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마귀와 성도들 간의 전쟁을 치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니라.

이 사람이 경배를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여기서 "생명을 받은 짐승의 형상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시간적으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 기술이 정확히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재로서는 이것이 정확히 어떤 형상이 될지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말을 하는 하나의 형상인데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이게 만드는 무언가라는 것이죠.

이것은 다니엘서 장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한 문명 사회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을 기억하시나요?

그가 어떻게 큰 형상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형상에 경배하도록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 형상에 경배하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다 죽었습니다. 그렇죠?

계시록에서 보는 내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느부갓네살의 형상은 적그스리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절을 보십시오.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요한계시록 :)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것은 사탄이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짐승의 표는 성도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매매를 못하면 지금 세상에서 제 기능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또는 어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라는 법을 만드는데 이 것이 바로 성도들에 대한 박해와 전쟁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들이 매매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짐승의 표는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 즉 성도들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장 등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매매를 할 수 없고 사형 집행 영장이 따라 다니게 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전세계에서 - 한 민족이나 국가가 아닙니다 - 전세계에서 매매를 못하고 우리에게 사형 집행 영장이 청구되어 죽음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되시나요?

그뿐이 아닙니다. 저 모든 감시 카메라, 차량번호 인식 카메라, 알몸투시기를 보십시오.

검문소에서도,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에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다른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만 할 것입니다.

“자, 오른손을 내밀어 주세요. '삑'. 이제 가도 좋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절대 지나친 억측이 아닙니다. 몇 세기 전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을 때엔 피부에 와 닿습니다. 그렇죠? 지금 이미 보고 있는... 그래서 저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여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어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십니까? 영적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하면서 당황하게 됩니다.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경고하시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경고했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대환난 시대에 살지 않았지만 모든 신자들이 겪는 그들만의 환난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너희도 알다시피, 진실로, 우리는 미리 경고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따라서 우리는 그 경고를 받고 이 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대환난기에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전혀 경고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미국 전역에 있는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성도들과 전쟁을 하기 전에 휴거가 일어날 거라고 가르치고...

휴거가 하나님의 예언의 시간표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휴거의 임박성”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무 때나 구름 속에서 재림할 수 있고...

재림에 대한 징후가 전혀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지 않으며 그 전에 먼저 일어나야 할 사건들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는 교리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들어보신 분?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이라는 이 교리는 예수님께서 아무 때고 다시 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오실 수 있다고 말하면 저는 묻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나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경엔 아무도 그 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각을 알 수 없다고 나와있잖아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 구절을 찾지 못해서 제가 도와주곤 합니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럼 제가 이렇게 말하죠. "제가 찾아 드릴게요. 마태복음 :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성경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보여 드릴게요. 이게 바로 주류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지금 기독교 서점에 가시면 갖가지 책과 비디오를 팔고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영화 들어보신 분 있나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성경과 상관 없는 완전히 비성경적 영화입니다.

마태복음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 여기 보세요.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르잖아요.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세요.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문제는 “어느 날”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말씀을 마치신 날이죠.

절에는 그 날이 "환난 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마태복음 :)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절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그 날이 “환난 뒤”라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논리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자, 보세요. 환난 뒤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보여주면...

"그건 휴거가 아니네요. 휴거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휴거가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건 환난 뒤잖아요. 휴거는 당연히 환난 전이니까요.”라고 말합니다.

다시 성경 어디에 휴거가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나와있는지 물어보면…

“자, 여기요.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알지 못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그건 휴거가 아니라면서요?”

"환난 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마태복음 장이 휴거에 관한 내용이 아닌데...

아무도 그 날과 시각을 모른다고 하셨을 때에는 마태복음 장이 갑자기 휴거에 관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들에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갑자기 휴거에 관한 내용이 됩니다.

"그냥 입 다물고 시키는대로 해. 조용히 하고 내가 말한대로 그냥 환난 전 휴거를 믿어"라는 것이죠.

“공평하게 양 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죠.”라고 하면...

“자, 다른 쪽 얘기는 이거야. 입 다물고 내가 말한대로 믿어. 자꾸 질문하지 말고. 조용히 하고 그냥 믿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게 “환난 전 휴거” 교리의 실체입니다. 사실이에요.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저는 수 많은 성경 구절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전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최소한 다른 거짓 교리들은 문맥 무시하고 꼬아서 해석하는 성경구절이라도 하나 있어요.

환난 전 휴거는 성경을 꼬아서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성경구절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환난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기록된 성경 구절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하나의 교리일 뿐입니다.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누군가 읽은 책이나 도표에서 나온 교리이지 성경에서 나온 성경에 근거를 둔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일반 성도들에게 설명해주면 아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이 이 교리를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알려 드릴게요.

환난 전 휴거는 보편적인 교리입니다. 인기있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면 환난 전 휴거를 가르쳐야 합니다.

환난 뒤에 휴거가 온다고 말하는 순간 따돌림과 배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제에서 거부 당하게 마련이죠. 그들은 이 교리에서 돌아서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에 대한 진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에요.

이 교리를 어둠 속에 묻어두는 방법은 "두려움"과 "위협"입니다.

저는 다른 목회자들과 자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진실을 알리고 그들도 제 의견에 동의하지만...

강단에서 이 교리의 진실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모든 동료 목회자들이 등을 돌릴까봐 두려운 것이죠.

이 주제로 나서서 발언을 하거나 교회에서 설교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어야만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환난 전 휴거를 믿지 않으면 교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과거 오랜 시간동안 잘못 가르쳐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요.

신학교에서 잘못 배웠다는 것과 교리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죠. 우리 모두 새로운 사실을 배워 나갑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잘못했다면 바로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목회자들은 결정해야 합니다.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환난 전 휴거 교리를 가르쳐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실제 성경의 가르침대로 환난 뒤 휴거가 온다고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이 하는 말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하는 완벽한 예입니다.

성경을 우리의 최종 권위로 삼고 실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따르는 대신 전통, 배운 것, 사람들이 말하는 것,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저도 과거 환난 전 휴거를 믿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교리였고 거기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접하게 된 후 성경을 다시 보고 성경에서 실제 뭐라고 가르치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세의 흐름에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있는 것과 내가 아는 진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환난 전 휴거” 교리에 대한 저의 입장 때문에 공격도 받고 험담도 당했지만...

만약 이걸 시청하고 있는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진실을 알고 나서...

그 믿음과 입장을 선언하신다면 이 비성경적인 환난 전 휴거 교리의 대세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입장을 바꾸게한 중요 성경구절 중 하나는 데살로니가후서 :-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휴거)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재림,휴거)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아직 그날이 가까이 이르지 않았고 순서상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휴거)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성경이 증거하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가 함께 모이는 날은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죄의 사람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임박한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등장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날이 가깝지 않으며...

누가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며 속이는 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해서 속지 말 것과...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절대 X, Y, Z가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오지 않으니까요.

휴거는 그냥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난기가 먼저 와야 하고,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아야 하며, 주님이 오시는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반드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고 죄의 사람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오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먼저 나타나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날이 먼저 와야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먼저 권력을 잡아야 그 뒤에 휴거가 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누가복음 장을 보시면 시간적으로 마태복음 장 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장이 누가복음 장과 평행 본문이기 때문이죠.

누가복음 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교리를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재림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악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때가 롯의 때와도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죠.

사람들은 “맞아.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세상은 사악해 질거야”라고 말하며...

지금 우리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가리키며 소돔과 고모라 같다고 하거나 노아의 날들처럼 사악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의 정확한 의미가 아닙니다.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 마찬가지로 롯의 날들에도 그와 같았으니 그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건축하였으되 롯이 소돔에서 나간 바로 그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려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이 본문의 가르침은 롯이 소돔을 탈출한 것이 휴거를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두 천사가 세상을 예표하는 소돔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도시에 퍼부어지기 전에 롯(신자)을 탈출시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그 분의 천사들을 보내 신자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 모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에서는 구체적으로 반시간쯤 지난 후에 그 분의 진노를 쏟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화 “남겨진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사라지고 다 어디로 사라졌냐고 묻는 상황은 실제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엔 우리가 사라지는 바로 그 날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시작하신다고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을 땅에 내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달려갈 것이며 바위가 떨어져서 불과 유황과 다가올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가려주길 바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그 날이 하나님께서 진노를 퍼붓기 시작하시는 날입니다.

성경에 해와 달이 어두워질 때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바로 그 날, 반 시간쯤 뒤에,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장에서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장에서 믿는 자들의 큰 무리가 하늘에 나타나고...

장에서 진노를 퍼부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장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진 뒤 휴거입니다. 간단합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입니다.

한 부류는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언급 조차 안되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사실 매우 이상한 일이죠.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때의 사건들에 대해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만큼 중요한 모든 시대 모든 신자들이 채여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는 사건을 빠뜨린다구요?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휴거가 요한계시록에서 전혀 언급도 안되고 발생하지도 않아서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므로...

수많은 환난 전 휴거론자들이 찾고 찾아서 결국 환난 전 휴거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냈고...

제가 반복적으로 듣는 그 근거 구절이 바로 요한계시록 :입니다.

(요한계시록 :) 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이것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입니다. 이 구절에 요한(단수, 한 사람)에게 말하는 “나팔”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thee, 단수) 보이리라."

이 장면이 바로 휴거라고 합니다. 단지 한 사람이 올라가는 장면인데요?

문제는 절은 읽지도 않고 이걸 휴거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휴거는 영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몸의 부활입니다. 실제 몸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는 것이죠.

영이 올라가는 그런 사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은 휴거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의 몸이 부활하고 그 뒤 살아 남아 있는 우리의 몸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는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요한이라는 한 인물의 영이 채여 올라가는 것은 절대 휴거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게 휴거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정말 엉성히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문자적 성경 해석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요한계시록에 휴거가 어디 나오냐고 물어보면 요한계시록 :에 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절에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는 말씀은 읽지도 않습니다.

요한의 몸이 실제로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몸은 밧모 섬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가는 이 휴거라는 사건은...

영적으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걸 휴거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해석인 것이죠.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을 휴거라고 보는 이유는 계시록에서 환난 전에 나오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어 맞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 찾기는 찾아야 했겠죠.

저도 환난 전 휴거 교리를 배우며 성장했지만 요한계시록에는 휴거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배워왔습니다.

항상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휴거와 같은 중대하고 중요한 사건이 마지막 때의 예언에 관한 책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휴거는 살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단지 사라지는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사건입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위를 보고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느니라.”

그 순간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떨어지면 위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이제 다 끝났다.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우리가 해냈다..."

마치 헐리우드 유명인사들이 입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어떤 곳에 입장할 때 보면 항상 불빛과 폭죽을 터뜨리고 연기를 피우곤 하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 좀 보세요."

요한계시록 장, 마태복음 장, 마가복음 장, 누가복음 장 등에서 묘사된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모습은 실제로 보면 정말 놀라운 광경이 될 것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또 지진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님이라고 해도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 칠흑과 같은 암흑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온 하늘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성경에는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저쪽까지 번쩍여 빛을 내는 것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채여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살아서 그날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생에 이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생애에 일어나서 제가 그 박해와 환난을 견뎌내고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일을 목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감격스러운 광경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밀스럽게 재림”하셔서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헐리우드식 개막쇼와 같이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전적으로 옳은 말씁입니다. 요한계시록 장에서도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라고 말씀하셨고...

현재 시제인 “오시느니라”(cometh)"라고 말씀하신걸 보면...

다음에 예수님께서 오실 때는 구름들과 함께 오시며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죠.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죽도록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걸 볼 때 통곡하고 울며 죽도록 두려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흥분되고 전율이 넘치는 실로 대단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사람들이 진실에 눈을 뜰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단순히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십대였을 때 요한계시록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고 읽더라도 “정말 그 뜻이야? 실제 그런 의미야?”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휴거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면서 성경이라는 책이 저에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읽다 보면 정말 쉽게 잘 이해됩니다.

우리가 주류 기독교와 근본주의 침례교도 진영에 다가서서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의 눈을 열어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부흥이 일어나고 설교자들에게 말씀 공부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켜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유는 교리적인 분열을 일으키거나...

성경의 예언에 대해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이 사건들은 실제 일어날 사건입니다.

성경은 앞으로 “단일세계정부”, “단일세계종교”, "단일세계화폐"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의 음모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닙니다. 실제 일어날 사건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기근이 있을 것이며, 역병이 번지고 박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전무후무한 환난에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환난 전 휴거라는 꾸며낸 이야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저도 휴거를 믿습니다. 성경적 교리이니까요.

그러나 휴거는 환난 후에 일어납니다.

“Jimenez 목사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우리가 뭘 하고 살든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살다가 늙어서 죽거나, 살면서 휴가도 보내고 노후연금에 투자도 하며 인생 즐기고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사라지면 끝이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이 전해지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나태하고 안일해졌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박해가 시작됩니다. 휴가도 가고 할 일도 해야겠지만 속 사람도 단련시켜야 합니다...

이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서 그 분을 알아가야 합니다. 지금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빼앗겨서 읽고 싶어도 못읽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언제고 모여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지만...

언젠가는 이런 모임과 이 성경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불법이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내용으로 설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박해가 오고,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요구되는 때가 오면 이 설교를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생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나면 이 설교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고 저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니 불만을 가지라고 말씀 하셨나요?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죠.

용기를 내십시오. 낙담하지 마세요.

설교 듣고 나가면서 “아, 정말이에요? 참수? 감옥? 기근? 역병? 진심인가요..” 하며 걱정하지 마세요. 용기를 내십시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 일이 우리 생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잠시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담겨 있는 분명한 진리에 감사 드립니다. 성령님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수많은 사람들의 세뇌와 거짓말과 스코필드 주석성경의 미혹 속에서 저 혼자서 이 사실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 그 방에서 성령님께서 그 수 많은 미혹들을 차단하시고...

제 마음 속에 마태복음 장에 나오는 이 세 단어(after the tribulation, 환난 뒤에)를 심어 주셨고 살 소년의 마음에 심어주신 그 말씀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 동일한 말씀이 오늘 밤 여기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가슴과 마음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하옵고 감사 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찬송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찬송: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을 하나 부르겠습니다.

찬송을 할 때 가사를 음미하지 않고 노래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찬송의 번째 줄을 보세요.

“나의 죄, 오, 이 영광스런 생각의 기쁨!” 이라는 부분을 보면...

“음, 내 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기쁘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 다음을 보면 "그 죄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는 더 이상 그걸 간직하지 않아요. 주님을 찬양해. 오 나의 영혼이여."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크게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의 죄, 오, 이 영광스런 생각의 기쁨이여! 나의 죄, 그 일부가 아닌 전부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는 더 이상 그걸 간직하지 않다네. 주님을 찬양해. 주님을 찬양해. 오 나의 영혼이여.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이 평안해.

주님, 나의 믿음이 보여지는 날을 재촉하소서.

저 구름이 두루마리처럼 떠나가고 큰 나팔소리 울려 날 때 주님 내려 오소서.

그와 같이 하소서. 내 영혼은 평안하나이다.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이 평안해.

성경은 구원받는 방법에 관해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로마서 :)

저도 의롭지 못하고 여러분도 의롭지 못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가 천국에 가기 위한 조건이라면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할 것

성경은 요한계시록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 잘 들으세요 –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저도 거짓말을 해봤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며 거짓말보다 더한 일도 다 해봤습니다. 인정하자구요.

우리 모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 죄에 대한 형벌을 깨달을 것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 분이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죄 없는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 죄도 짓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은 그 분을 때리고 그 분에게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 제가 지은 모든 죄를 마치 예수님께서 지으신 죄처럼 짊어 지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람들이 그 분의 몸을 취해 무덤에 묻었고 그 분의 혼은 지옥에 일 밤낮동안 내려가 계셨습니다 (사도행전 :).

일 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제자들에게 손 안에 못 자국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들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사도행전 장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그게 다 입니다. 교회에 다니거나, 침례를 받거나, 선한 삶을 살거나, 모든 죄를 회개해야 구원받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을 것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In-N-Out 버거 종이컵 바닥에도 적혀 있을만큼 너무 유명해서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인 요한복음 :입니다.

(요한복음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존하는”은 영원히 존재한다,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성경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존하는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살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영원하고 영존하는 생명입니다.

한번 구원 받고 그 분을 믿었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가 나가서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짓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 이 땅에서는 저에게 벌을 내리시겠지만...

제가 오늘 누구를 죽인다면 하나님께서 제가 반드시 벌을 받도록 하시고 징역, 사형 등 이 땅에서 어떤 형벌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더한 벌을 저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옥에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옥에 가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갖고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나쁜 일을 하고도 천국에 간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천국에 갔을까요? 너무 선한 사람이어서?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 "더 선한 삶"을 살거나 혹은 정말 "더 선한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죄에 대한 형벌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신뢰할 것

한가지만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들 중 한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어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누가복음:)

좋은 질문입니다. 그렇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받을까요? 아니면 소수만 구원을 받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마태복음 장에 나와있습니다.

(마태복음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태복음 :)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먼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여기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심지어는 그 분을 주라고 부르며 우리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했는데 왜 구원받지 못하냐고 묻는 자들이 많을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여러분을 구원할거라고 믿거나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혹은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교회를 다니고 모든 죄에서 돌이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행위를 신뢰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

그 분께서 하신 일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천국행 티켓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훌륭한 크리스천이고 많은 대단한 일들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너희를 안 적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한번 아셨다면 그것은 영존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한번 아셨다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면 그것은 그분이 여러분을 한번도 안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시면 영원히 아시니까요.

제 자녀들이 항상 제 자녀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태어나서 그 분의 자녀가 되면 영원히 그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집에서 말썽꾸러기일 수도 있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 크게 징계를 받는 사람이 되거나 인생을 망칠 순 있을지 몰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한번 구원받았다면 끝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저의 강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몇 분 시간이 남았는데 구원이나 마지막 때에 관한 질문이 있으면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지만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습니다. 저를 지금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옵소서. 예수님만을 신뢰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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